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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다반사 ]/주저리 주저리

봉하마을에 조문 다녀왔습니다.

by K. Martin 2009. 5. 28.
2009년 5월 27일,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5일째.

울화병이 날 것 같은 내 정신상태를 다잡고 싶은 마음에 오경원 선배와 조문을 다녀왔다.
가고싶은 마음은 진작부터 굴뚝같았는데 그게 차가 없으니 참 쉽지가 않더군. 이 뚜버기 인생 -_-;;


어제(26일), 부산에서 7시 넘어 출발했다가 다섯시간을 기다렸다는 모카님의 조언을 참고하여,
퇴근하자마자 옷 갈아입고 서둘러 김해 진영으로 향했다. 요기는 대강 소시지햄버거로.

진해에서 6시 10분에 출발하여,
봉하마을 도착한 시각이 7시 30분.

진영에서 회사를 다닌 이력이 있는 선배님 덕분에,
공설운동장이 아닌 봉화마을 입구 회사(공장) 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어
걷고 기다리는 시간을 많이 단축할 수 있었다.


이미,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조문을 마치고
김해공항이며 밀양역으로, 진영터미널로, 공설운동장으로 가는 셔틀을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있는지를 몸소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이미 줄은 시작되었다.
누가 줄을 서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이미 천천히 대열을 형성하여 걷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감동적이기까지했다.
(조문을 위해 마을로 들어가는 복잡한 좌측의 줄, 반면 조금 여유롭게 걸어 나오는 우측의 사람들)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한적한 시골길이었다.
요란한 도시의 소음도, 욕심도 다툼도 없는 그런 아름다운 곳.

그렇게 30분 정도 걸어 들어가 마을회관 즈음에 다다르니 조금씩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갈수록 줄은 두꺼워지고, 걸음의 폭도 좁아졌다.
앞의 천막에서는 방명록을 받고, 謹弔 리본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조문행렬의 반대쪽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억하는 각종 동영상들이 나오고 있었다.
눈시울을 붉히고, 눈물을 훔쳐내는 사람들 속에서 그분이 얼마나 아름답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눈앞에 분향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분향소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방송에서는 2시간정도 걸린다고 했는데,
늦게 온 사람들이 4시간도 넘게 기다리는 것을 보면 아마 그것은 평균치를 이야기한 듯 하다.


대략 30여명이 동시에 분향소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앞에서 봉사활동 하시는 분들이 국화꽃을 나누어 주고 경호원분들이 분향과 절은 자제해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
워낙 사람이 많아서 많은 분들이 절을 하고 매번 향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눈치 봐가며 사람들이 국화꽃을 얹는 사이 향을 피우고 맨 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사람들이 목례를 하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두 번 절을 했다.
절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시간관계상 먼발치서 분향소를 바라보며 대신했다.

고 제16대 노무현 대통령,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분향을 마치고 나와서 하루 10만명 이상이 먹고갔다는 그 소고기국밥과 떡을 먹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노대통령께서 차려주신 마지막 밥은 너무도 맛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생각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좁은 동네에 조문와서 밥을 먹고 가는데,
단 한건의 사고도 없이 질서정연한 모습들이 유지가 되는 것은,
물론 봉사활동을 해주시는 분들의 노력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국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도 분명히 한 몫 하고 있는 것이다.

조중동 찌라시는 국민의 알권리 운운하며 국민을 무시하고,
대한민국 국민들을 천하의 무지한 인간들 대하듯 하고있지만,
정작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렇게 잘하고 있단다.


보기좋다. 조중동. 공영방송 KBS는 어쩌다 저리 됐누....


그래도 들어와있는거 보면 신기해.



밥을 먹고, '눈물의 도로'라 불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생가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부엉이바위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많으셨을텐데, 어찌나 빨리 가셨는지.
괜스레 눈시울이 붉어졌다.


마치, 노전대통령께 보내기라도 할 것처럼 연등이 하늘 높게 날아올랐다.


사람들은 나눠준 촛불로 길을 밝히고 있었다.
(나중에 봉사활동 하시는 분들 저거 치우시려면 애좀 먹겠던데, 그래도 내려가는 내내 기분은 좋았다.)


내려가는 길에, 낯익은 분을 발견했다.
명계남 아저씨.
2Km가량 줄서 기다리는 조문객들에게 불편하게 기다리시게해서 죄송하다며 고개를 조아리는 모습.
가슴 아파하는 모습에 마음이 쓰여 한 번 안아드리고 싶었지만,
"고맙습니다" 말과 함께 악수를 청했다.
아저씨는 "조문 마치고 가는거냐? 여러분 이렇게 빨리 왔다 가는 사람도 있네요"라고 하셨다.
순간 기다리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버렸지만
그분의 농담속에도 기다리는 모든이들의 마음 속에도 따뜻함이 묻어 있었던 것 같다.



아... 이제 조금은 정리가 되는 것 같다.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라 하여 마냥 답답했던 마음도 조문 이후에 한결 가벼워졌고,
생활도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그간 우리는 먹고사는데 바빠서, 관심이 없어서, 혹은 꼴보기 싫어서
정치와 사회가 돌아가는 것들에 대해서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진정으로 서민들의 대통령이셨던 그분, 노무현 대통령.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신 그분을 편안히 보내드리며,
천천히, 그분께서 마지막까지 하고자 했던 일들, 그분의 업적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사회와 정치에 대해 공부를 해나가야 될 필요성을 느낀다.
그분이 걸어온 그 길을 계기로 해서, 차곡차곡 역사를 머리속에 정리해가며,
국민을 우롱하는 언론과 그 외 다른 모든 것들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지식과 힘을 기를 필요가 있겠다.

일국의 대통령이 해내지 못한 일일지라도,
국민 모두가, 개개인이 관심을 가지고 다같이 시작하면
곧 그분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우리가 이루는 셈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그분께서 진정으로 바랬던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